활동소식

CEO지식나눔과 회원, 그리고 멘티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전해드립니다.

활동소식

[SHARING WISDOM] 우의제회장 “ ‘난파선’ 올라탔다 인생 더 단단해졌죠”(한경머니 4월호)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4-15 00:00 조회4,725회 댓글0건

본문

[SHARING WISDOM] 우의제회장 “ ‘난파선’ 올라탔다 인생 더 단단해졌죠"

 한경 머니가 4월호에 만난 CEO지식나눔의 두 번째 멤버는 우의제(71) 하이셈 회장(전 외환은행장 전 하이닉스반도체 사장)이다.
 외환은행에서 행장까지 지내고 은행에서 은퇴한 뒤에는 2002년 당시 ‘난파선’이던 하이닉스반도체의 최고경영자(CEO)를 맡아 기업을 턴어라운드시키는 데 성공하며 주목을 받았다. 지금은 반도체 검사공정 외주업체 하이셈의 회장으로서 50여 년간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습득한 지식과 지혜를 대학생들에게 나눠주는 즐거움에 푹 빠져 있다.



 우의제 하이셈 회장은 기자에게 회사 사무실이 아닌 대학 강의실에서 인터뷰를 나눈 최초의 CEO로 기억될 듯싶다. 그를 만나기로 한 지난 3월 10일은 전·현직 최고경영자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모임인 CEO지식나눔의 세종대 오프닝 세리머니가 진행됐던 날. 6인의 CEO지식나눔의 멘토들이 2015년 1학기 새로운 멘티가 될 세종대 경영대학 학생들과 처음으로 대면하는 자리였다. 벌써 2년째 세종대 학생들과 멘토링을 이어오고 있다는 그는 “지근거리에서 청춘들을 만나는 일은 늘 유쾌하다”고 했다. 70대 경영인인 우 회장이 여전히 에너저틱한 이유도 거기에 있으리라.

 우 회장은 CEO지식나눔 내에서 금융 부문을 맡아 경제·경영 분야의 이론과 실무를 위주로 가르친다. 하지만 강의 내용의 절반은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현재와 미래 CEO의 자질과 덕목 등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에 관한 이야기다.

 우 회장은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 김종욱 전 우리투자증권 회장 등 평소 친분이 있었던 CEO들의 제안으로 초창기부터 CEO지식나눔에 합류했다. 그는 현역 시절 은퇴하고 난 다음에 하고 싶은 일들을 몇 가지 적어본 적이 있다. 그 리스트에 근무했던 기업 연수원에서 후배들과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다는 것 그리고 창경궁 같은 궁 내에서 안내 등 봉사활동하는 것이 포함돼 있었다. 우 회장은 “전자는 기회가 오지 않았고 후자는 1년에 1회 이상 학생들과 창경궁 봉사활동을 벌인다” 며 “평생 나에게 주어진 일들만 하고 살았는데 CEO지식나눔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어느 정도 실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후학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금융권과 제조업체의 전문경영인을 지내면서 느꼈던 안타까운 점들을 미래의 주역인 젊은 친구들에게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싶어서다.

 “나는 은행원으로서 은행을 바라보기도 했고 반대로 제조업체 사장의 시각에서 은행을 보기도 했습니다. 은행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부분도 거래처 입장에서 바라보니 보이더군요. ‘머천트뱅크(merchant banking)’ 등 해외 일류 은행들이 디테일한 선진 금융기법으로 기업에 접근해 오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 우리나라 금융 산업은 열악하고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조업체도 마찬가지죠. 삼성 하이닉스 등 반도체업체가 메모리 칩 메이커로서 세계를 과점하고 있지만 아직 원천기술 면에서 보면 후발 주자에 불과합니다. 저는 학생들이나 젊은 기업가들을 만나면 ‘이제부터는 당신들의 몫’이라고 강조합니다. 미래 세대에 메이저 롤 플레이어가 될 젊은 친구들이 지금부터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우물 안 개구리 식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은행장에서 제조업체 CEO로 하이닉스 턴어라운드의 주역


 “외환은행에서 직장인 인생을 마감하나 했는데 얼떨결에 하이닉스 사장을 한 번 더 하게 됐다”는 그의 말처럼 우 회장의 이력은 이채롭다. 2002년까지 반도체에 문외한이었던 그는 죽기 직전 인공호흡기로 목숨을 연명하고 있던 하이닉스에 구원투수로 들어가 멋지게 턴어라운드를 성공시킨다.

 우 회장은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1967년 외환은행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2000년까지 33년간 외환은행에서 근무한 정통 은행원 출신이다. 그런 그가 하이닉스 사장을 맡은 것은 2002년 7월. 10조 원이 넘는 막대한 부채를 떠안고 있던 하이닉스에 대해 채권단이 워크아웃 결정을 내린 직후였다. 우 회장은 막상 부실 기업 회생을 위한 구원투수로 나섰지만 안팎의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마이크론으로의 매각 작업이 마지막 단계에서 하이닉스 이사회의 부결로 무산되자 금융기관 등 외부의 지원 없이 독자 생존의 길를 택해야만 했다. 회사 내부에서 직원들조차 그에게 ‘채권단에서 파견된 점령군’ ‘반도체는 전혀 모르는 뱅커 출신 사장’과 같은 꼬리표를 붙였다. 하지만 우 사장은 특유의 친화력과 뚝심 있는 경영으로 3년 9개월 만에 채권단 공동 관리를 졸업하고 위기에서 벗어났다. 구조조정과 생산성 향상 등을 지휘하며 좌초 위기의 하이닉스를 세계 메모리 반도체 2위 회사로 부활시킨 것.

 특히 신제품 개발·생산에 필요한 연구·개발(R&D) 및 새 장비 구입 투자 자금이 부족해 기존 장비를 일부 개조하고 그에 맞는 공정을 개발해 양산에 임하겠다는 위험 부담이 큰 ‘블루칩 프로젝트’를 시도했다. 성공에 대한 확신을 가졌다기보다는 당시의 위기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마지막 시도였는데 ‘블루칩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1조 원 이상의 투자 효과를 거둔 쾌거는 성공적인 기업 회생 사례로 전 세계의 큰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제조 파트는 시설자금 투자가 없으니 신제품 개발을 못 해 제때에 시장 출하가 안 되고 영업 파트는 제품이 적기에 출시되지 않으니 매출액이 줄고 매출액이 줄면 자금경색으로 투자는 더더욱 어려워지는 소위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악순환이 계속 됐지요. 기업도 개인도 누구나 크고 작은 악순환의 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과연 어디서 끊어야 하는지가 관건이에요. 파급효과가 가장 큰 곳에서 깨는 것이 정답입니다. 하이닉스로 보자면 절체절명의 순간에 적은 시설 투자금으로 최대 수익을 낸 뒤 적자에서 허덕이던 회사가 2003년 7월부터 흑자 전환했지요. 한 번 흑자가 나기 시작하니 직원들도 신바람이 나고 그때부터는 승승장구하는 겁니다. 또 300mm 웨이퍼 생산공장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에서 최소의 시설투자금을 들여 중국에 공장을 지음으로써 그룹이 중장기적인 안정을 찾을 수 있었죠. 이것은 선순환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악순환의 덫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치명적인 곳을 깨부숴야 합니다. 그리고 중장기적인 비전을 가져야 해요.”

fb257d93d9236226708d48121003c0b8_99_2015



 우 회장은 하이닉스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고 분기 영업이익이 1조 원을 돌파해 한창 박수를 받고 있었다. 당시 주주총회에서 당연히 중임되리라고 모두가 예상하고 있었지만 2007년 2월 중임하지 않겠다는 발표를 해서 또 한 번 세간을 놀라게 했다. 자신은 애초부터 정보기술(IT)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재무적 측면에서 회생된 기업이 앞으로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전문경영인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후 우 회장은 2008년 하이닉스 협력사인 하이셈의 회장직에 올라 지금까지 경영을 맡아 오고 있다. 하이셈은 주성엔지니어링과 신성이엔지 케이씨텍 동진쎄미켐 등 하이닉스반도체 핵심 협력사 32개사가 지분을 출자해 설립한 반도체 검사공정 외주업체(테스트하우스)다.

우 회장은 요즘도 각 잡힌 슈트를 차려입고 새벽에 출근해 밤 늦도록 업무를 보는 날이 많다. 평생을 ‘피 말리는’ 경영인으로 살아온 삶이 다소 고단하지는 않을까. 그는 “스트레스가 있어야 건강하다”며 되려 웃어보였다.

“바쁜 사람이 건강해요. 아무것도 안 하고 늘어진 사람은 금방 늙습니다. 그만큼 사람의 마음이 중요하죠. 그래도 이젠 욕심은 조금 내려놓고 살고 싶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즐기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앞으로 세종대 멘티들에게 들려줄 인생살이의 지혜 몇 개를 미리 들려달라고 부탁했다. 우 회장은 자신의 인생은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오면서 더 단단해졌다고 말했다. 서울대 상대 출신 엘리트에 두 번의 전문경영인 경력까지 갖춘 그의 삶이 순조롭기만 할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 바라던 중학교 시험에 떨어져 이를 갈아야 했고 외환은행 시절엔 입사 동기 중 대리를 가장 늦게 달아 와신상담 했으며 ‘난파선’인 하이닉스에 승선했던 것 역시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이었다고.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인생은 노심초사한다고 되는 게 아니란 걸 뼈저리게 느꼈지요. 그래도 우리 애들보고 ‘노력하면 중간은 간다’고 얘기합니다. 또 하나 간절함의 힘을 믿어야 합니다. 간절하게 하고 싶으면 영감이 순간적으로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자다가도 아이디어가 어렴풋이 생각나면 벌떡 일어나 메모를 하기도 하는데 가끔은 그런 영감들이 크고 작은 기적으로 이어지더군요.”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92 광화문오피시아빌딩 1327호 | TEL : 070-7118-1923
Copyright (c)CEO 지식나눔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