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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제약 120년을 이끈 사람들]윤성태 휴온스글로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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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작성일17-07-13 00:00 조회3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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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제약 120년을 이끈 사람들]윤성태 휴온스글로벌 부회장

폐업위기 뒤집고 드라마같은 제2창업 '휴온스'

 

편집자주> 한국 최초 신약은 1897년 한 궁중 관료에 의해 만들어졌다. 궁중비법을 토대로 만든 이 약은 '애민정신'에 뿌리를 뒀다. 애민정신은 올해로 120주년을 맞는 한국 제약산업의 키워드다. 오늘날 우리가 '제약주권'을 갖기까지 제약 선구자들의 피와 땀은 120년사에 선명하게 새겨졌다. 이들에게 진 빚이 작지 않다. 법고창신. 한국 제약사를 이끌어온 인물들의 발자취를 쫓아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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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밑바닥 = 연간 매출 규모 20억원짜리, 단출했지만 그런대로 잘 굴러갔던 광명약품공업사가 위기에 내몰린 건 과도한 시설투자 때문이었다. 경기도 화성시 향남산업단지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당초 투자액 40억원을 훌쩍 넘어선 80억원을 투입한 게 화근이었다.

당시 1금융권 대출금리가 8~10%였는데 광명약품공업사는 2금융권에서 15% 넘는 이자를 물었다. 윤성태 대리는 입사 후 사채까지 끌어 쓴 사실도 알게 됐다. 이렇게 매월 나가는 이자만 7000만원 안팎.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와중에 아버지 윤명용 사장은 1995년 대장암이 발병, 2년만인 1997년 3월 별세했다. 그해 11월에는 외환위기(IMF)가 덮쳤다. 34살 나이에 떠안게 된 대표이사 자리는 버겁고 또 버거웠다. 아버지가 운명하자 돈을 빌려줬던 선친의 친구들은 사채권자로 돌변했다. 기약할 수 없는 어음을 발행하고 은행에 불려가서는 빚 돌려막기로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1998년에는 공장에 불이 났다. 약품 정제실 내 건조기가 전소 됐다. 불길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았다. '결국 이런 식으로 망하는구나'. 억장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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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재창업 기회 = 화재는 오늘날 휴온스그룹이 있게 한 '장난 같은 운명'이었다. 보험사로부터 받은 보험금으로 자금 회전에 숨통이 트였다. 60여명 직원들은 회사를 재건해보겠다고 밤낮없이 일했다.

화룡점정은 윤 사장의 예멘 방문이었다. 수액제 제네릭(복제약) 의약품 수출협상을 하러 간 길인데 여기서 20ml 용량 플라스틱 주사제를 만났다. 독일 제품이었는데 윤 사장은 이 제품에서 '돈맥'을 봤다.

당시 국내에서는 500ml 용량 플라스틱 용기는 많았지만 작은 용량 제품이 없었다. 20ml짜리 용기는 모두 유리여서 제품이 깨지거나 제품에 유리 가루가 들어갈 수 있는 위험이 상존했다.

윤 사장은 비싼 외국산 설비 수입을 배제하고 국내 기계업체와 설비 국산화까지 성공하면서 20ml 플라스틱 주사제를 국내 최초 개발했다. 이 제품은 불티나게 팔렸다. 월 50만개씩 판매가 이뤄져 연간 매출액은 120억원까지 급증했다. 2000년에는 회사의 빚도 다 갚았다.

고용량 비타민C 주사제도 대성공이었다. 어느 날 윤 사장이 매출 장부를 살펴보다 우연히 발견한 사실에서 출발한 제품이었다. 월 1000만원 안팎 팔리던 비타민C 주사가 일산병원에서만 1200만~1300만원어치가 팔리는 기현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 길로 일산병원으로 달려갔다. 한 호스피스과 교수가 암 환자에게 한 번에 500mg짜리 비타민C 주사 50개를 주사하는 걸 확인했다. 암 환자 면역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 윤 사장이 15g짜리 비타민C 주사제를 만들자 시장 반응은 뜨거웠다. 공장 기계를 쉴 틈 없이 돌려도 시장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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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헬스케어 기업으로 = 윤 사장은 2003년 회사 이름을 '휴온스'로 바꾸고 2006년에는 코스닥 시장에 상장시켰다. 2000년대 들어 상장 전까지 매출액은 연간 30% 안팎 성장했다. 2008년에는 충북 제천에 KGMP(우수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급 신공장을 건설했다.

오늘날 휴온스그룹 매출액(2016년)은 2450억여원으로 윤성태 부회장이 입사했던 1992년 20억원보다 120배 이상 늘었다.

휴온스그룹의 목표는 종합 헬스케어 기업이다. 의약품에서부터 미용, 화장품, 건강기능식품에 이르기까지 영역을 확장 중이다. 기존 제약사업 외에 필러(엘라비에)와 보툴리눔 톡신(휴톡스), 히알루론산 기반의 기능성 화장품 등 에스테틱 사업과 의료기기 분야에도 진출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개별인정을 획득한 발효허니부쉬추출물 기반 건강기능식품과 효소 및 발효기술 기반의 그린 바이오 사업 분야까지 손을 뻗었다.

2015년에는 창립 50주년을 맞아 2025년까지 3개 글로벌 생산기지 구축, 6개 혁신신약 개발, 9개 히든 챔피언(계열사)을 만들겠다는 '비전 3·6·9'를 제시하기도 했다.

 

"간절하면 꿈에서도 해답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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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태 휴온스글로벌 (54,100원 상승5100 10.4%) 부회장은 지난 2015년 '비즈니스 분야의 오스카상'이라고 불리는 'EY 최우수 기업가상'을 수상했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기업 언스트앤영이 매년 도전과 리더십으로 혁신을 이어가는 모범 기업가에게 준다.

윤 부회장은 △기업가 정신 △재무성과 △전략적 방향 △국내 및 세계적 영향력 △혁신성 △개인적 품성 및 사회적 기여도 등 6개 항목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엄밀히 말하면 선친이 세운 기업을 물려받은 2세 경영인이다. 그러나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폐업 직전의 기업을 오늘날 2000억원대 매출을 일으키는 기업으로 일구면서 사실상의 창업자로 인식되고 있다.

윤 부회장은 2000년 경영이 정상화 되기까지 절망적인 순간의 연속이었다고 회고했다. 선친을 원망한 적도 많았다. 그러나 한 순간도 포기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갈구하고 갈구하면 어디선가 해답이 나온다"며 "심지어 꿈에서도 해답이 나왔다. 그런 날은 잠에서 깨자마자 메모를 하곤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찾은 해답은 비급여시장으로 집중이었다. 제약산업은 규제가 강한 산업이어서 규제가 좀 덜한 곳에서 경쟁력을 쌓기로 했다. 그 결과 비만 등 웰빙의약품에 발을 들여놓게 되고 뷰티 품목인 필러와 보툴리눔 톡신, 비타민 주사제, 의료기기 등으로 외연을 넓히게 됐다.

머니투데이 김지산기자 ​

윤 부회장은 휴온스 엘라비에 필러 1호 고객이기도 하다. 회사 품질을 제일 먼저 테스트해 보고 스스로 품질을 입증해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윤 부회장이 1997년부터 20년째 대표이사 업무를 수행하면서 창업보다 중요한 게 창업 이후 운영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밝혔다. 경영을 모르면 아무리 훌륭한 아이템이 있어도 기업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

윤 부회장은 "아이디어만 가지고도 창업을 할 수는 있다"며 "그러나 막연히 돈을 잘 벌 것 같다는 느낌만 가지고는 안된다. 완벽하게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만 창업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진짜 싸움은 창업 이후"라며 "회계와 인사, 현장 메커니즘을 정확히 알아야 기업이 제대로 굴러가는 데 대충 경영 공부를 해서는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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